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문단 편집) === 라이헨바흐 조약과 프라하 회담 === 대불동맹군은 6월 27일 라이헨바흐 조약을 체결하여 나폴레옹이 메테르니히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스트리아가 참전하겠단 것을 확정하였다. 나폴레옹은 드레스덴 회담에서 실수했다 여겨 프라하에서 회담을 열어 휴전을 8월 10일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프랑스군은 이베리아 전선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알게 된 영국도 즉각 증원군을 이베리아로 파견했고 웰링턴은 1812년 11월 '훈타 슈프레마 센트랄(최고 중앙 위원회)'에서 스페인군 총사령관으로 선출, 1813년에 8만 7천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고 봄에 10만명으로 증강되었다. 웰링턴이 더욱 많은 병력으로 위협하고 있는데 나폴레옹은 스페인 주둔군을 1만 5천이나 빼내 독일로 보냈다. 그 상황에서 원수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빴고 결국 6월 19일 비토리아 전투에서 [[호세 1세|조제프]]의 스페인군이 개발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승리에 도취된 영국군이 민간인들을 약탈하며 날뛰기 시작하여 웰링턴이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카탈루냐 진공을 연기했다는 것이었다. 7월 1일에 비토리아 전투 소식을 전해들은 오스트리아는 동맹군 합류에 뜻을 굳혔다. 만약 이 시점에서 나폴레옹이 라인 동맹을 포기하였다면 러시아의 서유럽 진출을 우려하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었을 것이나 문제는 나폴레옹이 지나치게 막무가내로 자신의 요구만을 주장했던 것이다. 프라하 회담에서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의 지연 전술에 학을 떼면서도 바르샤바 공국 해체, 프로이센의 엘베 방면 영토 회복, 라인 동맹의 해체에 대해서 받아듣이라고 요구하였다. 아르망 드 콜랭쿠르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자고 했으나 나폴레옹은 라인 동맹은 자연국경 수호를 위한 보루라면서 거부하고 바르샤바 공국을 분할하는 대신 함부르크와 트리에스테를 요구하며 작센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영토를 할양하라고 했다. 이에 콜랭쿠르는 시의적절한 양보가 없어서 파멸하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이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는 약속대로 8월 11일 프랑스에 선전포고했다. 여기에 스웨덴의 [[칼 14세 요한|베르나도트]]가 참전하면서 85만에 달하는 동맹군이 나폴레옹을 회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동맹군은 새로운 합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트라헨베르크 계획(Trachenberg Plan)이다.[[칼 14세 요한|나폴레옹의 웬수]]와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라데츠키]] 장군([[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의 주인공)에 의해 계획되었으며 슐레지엔의 트라헨베르크 성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알렉산드르 1세, 베르나도트가 모여서 채택되었다. '''트라헨베르크 성에서 합의의 핵심은 동맹군의 지휘체계를 세워 담당 권역을 배분하고, 협동작전 즉 1개군이 공격받을 경우 아군의 측면을 보호하며 나폴레옹의 측후면을 공격한다는 합의를 한 것.'''[* 오늘날에는 '연합 작전이라면 당연한 내용 아닌가?' 싶은 사항들이지만 당시에는 따로 합의를 해두어야 할 만큼 생소한 일이었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 영국 모두 꿍꿍이와 잇속이 다른데다가, 특히 러시아 장군들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에 하도 작살이 나서 독일인을 '겁쟁이 소시지들'이라 경멸한데다가 이 시절까지 이런 환경에서의 연합작전은 생소한 거라 군은 오직 자국 군주에게만 충성하고 다른 명령권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 구체적으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최소한 15만, 프로이센은 8만 이상의 병력을 유지할 것과 구체적으로 3개 군(Army)를 두어 * 1군 '뵈멘(보헤미아)군/ 남군(南軍)': 25만 명 주력군으로 카를 필리프 추 슈바르첸베르크 오스트리아 원수가 지휘하며 [[요제프 라데츠키]]가 참모장. 주력군 정상 --시어머니 3인방--(알렉산드르 1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프란츠 2세)가 참가하며[* 슈바르첸베르크 원수는 프란츠 2세에게 편지에서 --엑스맨-- 알렉산드르 1세는 사령부에서 할 일 없이 놀고 먹는 러시안 [[똥별]]들의 중상모략과 지휘간섭을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나폴레옹의 주력을 상대하고 상대적으로 병력이 적은 슐레지엔 방면 3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 2군 '북군' :12만 7천 명 스웨덴 왕태자 베르나도트 지휘. 뷜로 장군과 타우엔친의 프로이센의 2개 군단도 참가하며, 러시아에서 1개 군단을 지원한다. * 3군 '슐레지엔군' : 10만 4천 명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가 지휘하며 참모장은 [[그나이제나우]]. 러시아군 3개 군단과 프로이센 1개 군단이 참가했다. 전체 동맹군 총사령관은 주력 1군을 맡은 슈바르첸베르크 원수가 맡았고 러시아군은 비트겐슈타인의 삽질에 열받은 알렉산드르 1세가 또 개입하여 경질하고 러시아 원정 때 욕먹고 경질당한 바르클라이 데 톨리를 기용했다. 특히 동맹은 각 군이 --서로 잘났다고-- 먼저 적을 공격하거나 하며 간격이 벌어지는 걸 금지했다. 물론 적 주력군 상대는 자제하고, 공격받을 경우 상호 협조로 적의 측면과 후면을 노리고 '''적군이 퇴각시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합의했다. 나폴레옹을 상대로 숫적 우위를 유지하며 각개격파를 노리는, 나폴레옹 입장에선 환장할 만한 작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